2014년 3월 30일 일요일

인도를 측량하다-인도대삼각측량

무굴 제국을 굴복시키고 인도에서의 경쟁자였던 프랑스까지 몰아낸 영국은 동인도 회사를 앞세워 조금씩 인도를 장악해 나갔다. 이 와중에 영국은 인도라는 중요한 전략 자원에 대한 조사를 위해 1767년, 인도 측량국(Survey of India)을 설립하고 인도에 대한 각종 지리 조사를 실시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인도 전체 지역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여겨지면서 영국은 인도 전체에 대한 측량 조사를 계획하게 되었다.

인도 대삼각측량(Great Trigonometic Survey)이라는 이름은 문자 그대로 인도의 지형을 삼각 측량으로 쟀다는 뜻이다. 삼각측량은 하나의 기선(Base line)에서 두 측점을 재고 이를 이용해 삼각형을 연속으로 만들어 가며 측량하는 것을 말한다.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삼각형을 만드는 조건 중에 "한 변과 두 끼인각의 각을 안다"를 이용한 것과 같다. 측량에서는 가장 기초를 이루는 측량 방법이라 해서 기초측량으로 불린다.

기선의 시작 부분은 인도 동쪽 벵골만에 연하는 마드라스, 지금의 첸나이 인근에 설정되었다. 이 지역은 당시 무역을 위해 유럽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고, 많이 발달한 곳이기도 했었다. 지나치게 복잡하고 또 70년에 가까운 대대적인 작업 기간에 대해 일일이 다 설명하긴 어렵다. 1802년 대삼각측량이 실시된 이후, 세포이의 난이나 무굴제국의 멸망, 인도 동인도회사의 해체 등이 일어났고, 책임자도 4명이 거쳐 갔다. 19세기 인도의 역사를 이 작업이 차지했다. 투입된 작업자들도 가장 많았을 때가 700명이 넘었을 정도였고, 인도 전역은 물론 히말라야 산맥과 벵골, 더 나아가 버마까지도 측량 범위에 포함되었다.

60년에 걸친 대사업 중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이름도 들어 있었다. 조지 에베레스트 경은 윌리엄 랜튼을 이어 2대 사업 책임자였는데 사실상 인도 측량 작업은 에베레스트 대에 거의 다 완성되었다. 그의 이름을 따서 당시 측량 했던 산들 중 가장 높았던 산에 그의 이름을 땄는데 그 산이 바로 지금의 에베레스트 산이다. 인도 대삼각측량은 1870년에 거의 대부분 마무리 되었지만, 이후에도 인도 측량국은 계속 유지되어 1920년대까지 인도 대삼각측량은 계속되었다.

인도 대삼각측량으로 인해 영국은 인도를 효율적으로 식민지배, 수탈 관리 할 수 있게 되었다. 지형에 따라 행정구역도 적절하게 나눌 수 있었고, 영국이 인도에게 마지막으로 준 재앙 선물인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 분리도 대삼각측량이 있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분리가 가능했다. 측량이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대충 이루어져 국경선 등이 대충 형성된 아프리카 국가들이 현재 어떤 분쟁을 겪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면, 근대 사회에 있어 정밀한 측량은 좋든 나쁘든 필수적인 요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비록 인도나 한국 처럼 강제적인 측량을 겪은 곳일지라도 말이다.
1870년 작성된 인도 대삼각측량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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