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7일 금요일

라 데팡스-파리의 꺼지지 않는 횃불



프랑스 파리의 라 데팡스는 현대화된 파리의 상징이자, 파리의 핵심적인 경제 활동의 중심지이다. 72개의 마천루가 있고 그 건물들과 주변 건물에서 자신의 일에 종사하는 18만 명 가량의 노동자가 주된 경제 활동을 하는 곳이다.

에투알 개선문 너머로 보이는 라데팡스의 마천루들#


라 데팡스는 파리 개선문에서 북서쪽 샤를 드 골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나타난다. 라데팡스의 교통시설은 모두 지중화되어 있으며, 주차장, 기차역, 지하철역 모두가 지하에 층층이 겹쳐져 있다. 따라서 가장 큰 트징은 가장 위쪽의 지상에서는 통행하는 차량을 거의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애초에 차로가 없다. 라 데팡스의 지상 부분은 철저하게 완전한 보행자 구간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라 데팡스(La Défense)라는 이름의 유래는 이곳에 위치한 같은 이름의 라 데팡스 드 파리(La Défense de Paris)라는 청동상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이 동상은 보불전쟁 당시 전사한 프랑스 장병들을 기리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지금도 라 데팡스에 위치한 조형물 중의 하나이다. 또한 라 데팡스의 위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파리 르브루 박물관의 피라미드에서부터 까루젤 개선문, 콩고드 광장의 오벨리스크, 에투알 개선문, 뇌이 교, 라 데팡스의 신개선문까지의 곧게 뻗어 있는 역사의 축(Axe historique)을 형성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라 데팡스의 형성은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 프랑스는 1차 세계대전 승전국임을 자랑하기 위해 파리의 여러 시설물들을 개축하고, 또한 산업화로 인구가 확장되면서 교외 지역으로의 확장을 계획하고 있었다. 특히 당시 역사의 축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거대한 일직선상의 축을 형성하려고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에투알 개선문의 서북쪽 방향으로 개발이 연장되게 되었고, 이것이 라 데팡스 개발의 배경이  되었다.


1940년대 전쟁이 발발하고 난 이후 프랑스는 빠른 전후 복구를 하면서 외곽으로의 확장에 힘쓴다. 그리고 1958년 라 데팡스 지역의 개발을 추진할 라 데팡스 개발청(ESAD)이 발족했다. EPAD는 프랑스 정부를 비롯해 당시 오드센느 주가 형성되기 전이라, 라 데팡스의 지역을 실질적으로 관리하고 있던 3개의 지자체 도시의 대표들로 구성된 조직이었다.(오드센느 주가 생긴 이후로는 주에서도 개발청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의 주된 업무는 라 데팡스의 개발계획 수립과 이에 필요한 인프라 구축, 유지 및 보수 등이었다. 운영비는 라데팡스 구역의 건축권을 외부 업자에게 판매하여 충당하는 것이었고, 이로 인해 라 데팡스 구역에 있던 기존의 상가들과 주택 등은 모두 철거되었다. 남은 것은 1958년 당시 세워져 있던 CNIT(국제전시장)와 당시 짓고 있던 ESSO 타워 뿐이었다. EPAD는 원래 2007년 해체될 예정이었으나 좀 더 연장되어 2010년 해체되었다. 라 데팡스의 관리권은 이후 오드센느 주가 단독 관리하는 센느 개발청(EPASA)과 합병되어 라 데팡스 및 센느 개발청(EPADESA)로 변경되었다.


1954년 초창기 계획된 라 데팡스 도시 모델#
1968년 변경된 라 데팡스 도시 모델#
라 데팡스의 원래 개발 계획은 샹델리제처럼 한가운데 도로가 지나면 그 양쪽으로 건물들이 배치되는 형태였다. 하지만 EPAD는 이 계획안이 향후 도로 수용량을 감당하지 못할 거라 판단해 폐기하고 새로운 기획안을 구성했다 그 결과 1960년 새로운 계획안이 만들어 졌다. 새로운 계획안은 1920년대 저명한 건축가였던 르 코르뷔제(Le Corbusier)가 포트 마이요(Porte Maillot) 개발 당시 제시했던 아이디어에서 따온 것으로 보행로와 도로를 분리해서 배치하자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르 코르뷔제가 제시한 새로운 아이디어는 두 개의 거대한 공간으로 분리되는 판형 구조를 만들고 보행로와 건물을 그 판형 구조물의 지표면에 배치하고 지하에는 차로와 주차장 등을 구조물 내부에 배치하자는 것이었다. 르 코르뷔제가 주장했던 1920년대에는 이것이 기술상 어려워 무산되었으나 1960년대는 사정이 달랐다. EPAD는 이 계획안을 기초로 지상에는 보행자 통로만을 배치하고 지하에는 여러 층의 주차장과 차로, 기차역, 지하철역 등, 자연 경관을 해치는 시설물들을 모두 지중화했다.

라데팡스 지하 구조도#



라 데팡스의 현재까지의 개발과정은 크게 3기로 나뉘어진다. 1기는 1950년대에서부터 10년 사이로 이 당시는 라 데팡스의 모든 것들이 새롭게 시작되던 시기였다. 또 가장 엄격한 시기이기도 했다. 당시 건축 기술의 한계로 인해 라 데팡스에 건설되는 모든 빌딩들은 가로 42미터, 세로 24미터, 높이 100미터 이내의 규모로 건설되도록 규격이 마련되었다. 2기는 1970년대 초, 건축기술의 발달과 함께 시작되었다. EPAD는 십년 전 건축 기술을 기준으로 마련된 규격을 완화하는 한편, 초고층빌딩의 건립을 허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몇 년도 채 지나지 않아 1973년 발생한 경제 위기로 인해 라 데팡스에 입주하려는 기업들이 나타나지 않았고, 이는 토지 매각으로 유지비를 마련하던 EPAD에게 있어 큰 적자를 발생시켰다. 5년 간에 걸친 불경기가 지난 이후에야 라 데팡스는 정상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 80년대에 이르면서 그 이전보다 더 높은 초고층빌딩들이 들어섰지만, 동시에 유동인구의 동선을 최소화하며 자연적 환경을 우선시하는 형태의 사무실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라 데팡스는 현재 프랑스에서 가장 중요한 중심 업무지구가 되었고, 혹자는 유럽의 맨하튼이라고 표현할만큼 라 데팡스는 발전하게 되었다.


라 데팡스 광장. 왼쪽 앞의 건물은 CNIT이다.#
하지만 라 데팡스를 보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은 경제 업무 지구라는 점보다 그 구조, 교통 인프라를 지중화했다는데 있다. 덕분에 라 데팡스는 유럽의 맨하튼이라는 수식어에도 불구하고 복잡하고 차가운 이미지의 맨하튼과 반대로 자연적이고, 인간친화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이는 향후 도시 개발자들이 주목해야 할 미래의 도시의 한 모델이기도 하다.

참조 및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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